[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이태원 참사에 대한 추모 물결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심정지 환자 치료 과정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미 심정지가 발생한 지 시간이 꽤 지난 환자가 대다수였음에도 대부분 심폐소생술(CPR)을 시행하며 병원으로 이송됐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오히려 긴급 조치가 필요한 생존 확률이 남아 있는 중증환자들은 치료가 지연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반면 혼란스러운 사고 현장을 고려했을 때 생존 가능성이 높은 환자부터 CPR을 실시하고 병원 이송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CPR 의료윤리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사망의 확실한 임상적 징후가 있을 때’에만 CPR 등 소생술을 멈출 수 있다.
사건 발생 후 50분 지나서야 구조…심정지 ‘골든타임’ 한참 지나
4일 사건 현장에 있었던 의료진에 따르면 이미 환자들을 구조할 당시엔 심정지 환자들을 살리기 역부족이었다는 게 다수 의견이다.
첫 신고가 접수된 것은 10시 15분 정도이고 사고 현장에 소방 구조대가 도착한 것은 신고 접수 뒤 4분만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너무 많은 인파들이 사고 현장 주변을 애워싸고 있어 구급차 진입이 어려웠다는 점이다. 또한 워낙 많은 사람들이 좁은 공간에 밀집해 있다 보니 제일 위급한 아래쪽부터 구조하는 데도 어려움이 많았다.
이 때문에 사건 발생 뒤 50여분이 지나서인 밤 11시쯤이 돼서야 의식을 잃은 환자들이 들것에 실려 나오기 시작했다. 이미 시간이 너무 오래 지체된 후였다.
보통 응급의학적으로 심정지 이후 골든타임은 4~5분가량이다. 이 기간이 지나버리면 뇌로 공급되는 혈액이 정지돼 조직에 산소가 부족한 허혈 상태가 되고 결국 뇌세포가 파괴되는 괴사 상태가 돼 뇌손상이 진행된다.
뇌손상은 다시 산소가 공급된다고 해도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골든타임 안에 심폐소생술을 통해 뇌손상을 최소화하면서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이 중요하다.
심정지 5분이 제세동을 시행해도 신경 손상…생존퇴원율 8.6%‧뇌기능회복률 5.1%
심정지 환자 생존율과 관련해선 다양한 연구가 있는데, 환자 생존율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심정지 후 심폐소생술과 제세동을 할 때까지의 시간이다.
심정지 환자를 발견한다면 우선 CPR을 시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한심폐소생협회에 따르면 CPR을 시행하지 않은 경우 제세동에 의한 생존율이 1분에 7~10%씩 감소한다. 반면 심폐소생술이 시행되면 제세동의 성공률이 분당 3~4% 정도로 감소한다.
즉, 심정지 현장에서 CPR을 시행하면 CPR 시행 없이 제세동을 할 경우보다 성공 확률이 2~3배 증가하는 것이다. 현장에서 목격자 심폐소생술이 시행되면 환자의 신경학적 기능도 더욱 잘 보전된다.
2020년 한국 심폐소생술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현장 응급의료팀이 기본 소생술만 가능한 경우에는 6분, 전문소생술이 가능한 경우에는 10분(지도 의사의 직접 지도를 받은 경우에는 연장 가능)의 심폐소생술을 현장에서 시행한 후 병원 이송을 고려하도록 권고된다.
그러나 이번 이태원 압사 사고의 경우, 이미 사고가 발생한 지 1시간 가량이 지나 구조가 이뤄졌기 때문에 대부분의 심정지 환자들을 살리기 어려웠다는 게 다수 의료진의 견해다. 보통 성인은 심정지 후 5분이 지나면 제세동을 시행하더라도 신경 손상이 발생하게 된다.
심정지 환자가 소생하는 가능성도 매우 낮다. 2018년 우리나라 심장정지 생존퇴원율은 8.6%이며 뇌기능회복률은 5.1%에 그친다.
지역사회와 응급의료체계 및 병원에서의 소생 노력에도 불구하고 심장정지 환자의 대부분이 사망하며 생존자 중에서도 신경학적 손상으로 일상생활에 복귀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회복 불가능한 심정지 환자가 아무런 우선순위 없이 각 병원으로 이송되면서 의료인력 부족이 심각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심정지 환자 1명이 병원으로 이송되면 굉장히 많은 응급의료 인력이 필요하다. CPR에 이어 충격필요리듬을 치료하기 위해 자동제세동기가 사용되고 이후 관찰되는 심전도 리듬에 따라 제세동, 약물투여, 전문기도유지술 등 전문소생술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보통 심정지 환자 1명이 들어오면 5~10명의 의료진이 필요하다. 한번에 2~3명의 환자만 몰려도 치료 역량이 부족해진다"며 "이번 이태원 사고 당시 대부분의 소생 불가능한 심정지 환자가 병원으로 들어오면서 병원마다 치료가 필요한 환자를 돌보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아수라장서 환자 임상적 징후 확인 어려워…환자 대다수 어려 포기 힘들었다
반면 수많은 인파가 뒤섞여 있고 환자들의 임상적 징후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치료 우선순위를 결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 심폐소생술 가이드라인 중 CPR 의료윤리에 따르면 병원 밖 심정지 환자에 대한 CPR 등 소생술을 유보하거나 중단할 수 있는 상황은 3가지 경우다.
우선 첫번째로 ▲심폐소생술을 하는 구조자가 심각한 위해를 입을 위험에 처해 있는 상황이거나 ▲사망의 확실한 임상적 징후가 있는 경우 ▲심폐소생술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학적 지시 또는 소생술 시도 금지 표식이 있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 중 이번 이태원 참사 과정에서 CPR을 중지할 수 있는 예외사항은 사망에 대한 확실한 임상적 징후가 있는 경우 뿐이다.
사망의 임상적 징후는 사후 경직, 시반, 참수, 신체 절단, 부패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이번 사고 현장에서 수백명에 달하는 환자들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사망에 따른 임상적 징후를 판단하기 어려웠다는 게 일부 의료진들의 견해다.
특히 환자 대부분이 20~30대 젊은 층이었다는 점도 치료 우선순위를 결정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차의과대학 응급의학과 박수현 교수는 "소생이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되는 심정지 환자들이 60~70세만 됐어도 과감히 생존 확률이 높은 환자들을 위주로 병원 이송을 감행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그러나 이번 사건의 희생자 대부분이 매우 젊은 층이었다. 어릴수록 간혹 심정지 이후에도 생존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현장 의료진 입장에서 이들을 모두 포기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