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수호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 10일 전국의사 총궐기대회를 의사 3만명(경찰 추산 1만명)이 참석해 성공적으로 마쳤다. 비대위는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협상과 동시에 또 다른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비대위 이필수 위원장은 “23일 비대위 전체 회의에서 협상단을 구성하고 비대위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한 정부 협상을 준비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비대위와 의협 집행부 사이에 갈등이 표출되는가 하면, 비대위 내부에서 협상단 조직 구성에 잡음이 나오고 있다. 의료계는 대정부 협상을 시작하는 중요한 시기인 만큼 내부 갈등 표면화는 자제할 것을 당부했다. 일선 의사들과 전직 의협 임원들에게 의협 비대위에게 바라는 점을 들어봤다.
집행부와 비대위 갈등 드러내선 안돼
개원의 A씨는 “비대위는 개원의 집회를 성공적으로 치뤄놓고 의협 추무진 회장 등 집행부와 갈등을 노출했다”라며 “의사들은 이러다가 적전분열(敵前分裂)로 투쟁이 실패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의협 집행부가 투쟁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많은 의사들이 알고 있다”라며 “비대위 속으로는 열화가 나겠지만 내부 갈등이 외부로 드러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대학병원 교수 B씨도 “현재는 전시와 같은 상황인 만큼 비대위는 받아들이기 힘들어도 집행부와 타협하고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라며 “그래야 정부도 비대위를 협상의 주체로 인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공의 C씨는 “문재인 대통령까지 의료계와 소통하라는 발언을 할 정도로 의료계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비대위와 집행부가 내부 갈등을 일으키다 주어진 기회를 놓칠 수가 있다”고 했다.
비대위 내부 단합도 중요한 시기
개원의 D씨는 “비대위 내부에서 협상단을 꾸릴 때 특정인 참여 여부에 대한 잡음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협상을 잘 이끌기 위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고민해야 하며, 본인이나 특정 직역(진료과 등)이 부각되려는 욕심을 가져선 안 된다”고 했다.
의협 강청희 전 부회장(용인 기흥구보건소장)은 민주적인 비대위 운영으로 의견 합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 전 부회장은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는 합리적 주장이 힘이 있다”라며 “의사 회원들의 전폭적 지지와 동의가 뒤따라야 의미 있는 대정부 협상이 된다”고 했다.
강 전 부회장은 “의협 집행부로 일하던 지난 2014년 정부와 36개 어젠다의 협상을 이루고도 집행부가 (회장 탄핵 등으로)사후 추진동력을 잃어버린 아픈 기억이 있다”며 “의료계 내부 통합과 의견 합일이 무엇보다 우선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보장성 강화정책은 지난 정권의 4대 중증질환 등 국민 건강권 강화를 위한 시대적 명제라고 했다. 이를 반대하기 보다는 의료계 합의로 대승적인 주장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의료계 요구안은 외부용역을 통해서라도 10년 후를 내다보는 혜안과 전문성이 담긴 제도 개혁안으로 다듬어야 한다”라며 “수가 정상화도 필요하지만 의사들의 대승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차원의 의료계 내부의 공감대 형성이 우선”이라고 했다.
수가 정상화만큼은 분명히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도 다수였다. 비대위의 요구사항 1순위도 ‘수가 정상화를 위한 로드맵 마련’에 있었다.
봉직의 단체인 대한병원의사협의회 관계자는 “정부의 정책을 무조건 반대하기 보다 그동안 주장했던 수가 정상화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며 “의사는 현장에서 만나는 환자들에게 의료 현실의 문제점을 알리면서 의료계 주장을 펼쳐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일반 국민이 문재인 케어의 최대 수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료계가 지속적으로 주장해야 한다”라며 “문재인 케어는 경제활동이 가장 왕성할 때 수입 기준으로 지출을 늘리고, 노후를 위해 저축한 돈까지 꺼내 쓰자는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비대위는 의약분업 이후 정부 정책이 일방적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라며 “정부가 제시하는 눈 앞의 ‘당근’에 안주하지 말고 의료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요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봉직의 E씨는 “문재인 케어 등으로 의료비를 줄이면 의료의 질이 전반적으로 하향 평준화된다는 여론을 만들어야 한다”라며 “수가를 정상화해야 국민에게 양질의 의료를 제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국민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주대병원 내분비내과 김대중 교수는 “협상을 위해 의료계 내부의 합의된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라며 “저수가 문제를 개선하려면 진찰료와 수술수가 인상이 핵심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협상은 누가 누구를 이기기 위한 싸움이 아니다"라며 "협상은 서로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윈윈전략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주장까지
의협 주수호 전 회장은 요양기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와 전문가단체로의 위상 재정립을 주장했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란 모든 의료기관이 의무적으로 건강보험 진료를 해야 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큰 틀에서 다소 급진적인 주장을 펼친 다음 정부 선택에 맡기자는 것이다.
주 전 회장은 “비대위는 정부의 보장성 강화라는 프레임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협상이나 투쟁을 하겠다고 한다”라며 “의사들은 단지 보장성 강화 대책의 재원을 마련하라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며, 살인적인 저수가를 적정수가로 올려달라고 집회에 참여한 것도 아니다”고 밝혔다. 주 전 회장은 “의사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건강보험제도가 도입된 이후 억압된 의사들의 전문가적 자율성을 돌려 달라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주 전 회장은 “정부는 절대 갑의 위치에서 전문가적 자율성을 짓밟으면서 최선의 치료를 받을 환자 권리를 훼손했다”라며 “의료계는 전문가의 자율성을 확보해 제대로 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국민 권리를 찾아줘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의사들이 진정 원하는 것을 전면에 내세우고 그 프레임 내로 정부를 끌어들여야 한다”며 “문재인 정부의 보장성 강화대책은 의사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진행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전문가의 자율성을 훼손해 국민 진료권을 침해하는 현 의료제도의 틀을 바꿔야 한다”라며 “의사의 전문가적 자율성을 훼손하고 민간 자영업자조차 정부의 하수인으로 전락시킨 핵심 요인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에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