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 #3.
" 사실대로 말해야죠. "
수술을 끝내고 수술방 바깥에서 맘 졸이며 기다리고 있던 할머니와 딸에게 갔다. 덩어리를 가지고...
요즘이야 대부분의 수술이 복강경 수술이라
뱃속에 커다란 거즈를 넣고 배를 닫을 일이 별로 없지만
개복수술시 항상 배를 닫기 전에 거즈 카운트를 한다.
수술 전 카운트한 갯수와 수술 후 카운트한 갯수가 맞지 않으면
그 거즈가 나올 때까지 배를 닫지 못한다.
30여 년 전 그 의사도 수술시에 거즈 카운트를 안했을 리 없다.
그러나 그렇게 철저하게 한다고 해도 가끔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
물론 수술에 참여한 scrub, circulating간호사가 하는 job이다.
그러나 수술방 내에서의 모든 문제는 온전히 Operator의 책임이다.
어떠한 변명으로도 빠져나갈 수 없다.
보호자들에게 설명했다.
" 아이구... 세상에나... "
" 저런 나쁜 놈들... "
충분히 예상 가능한 반응이었다.
당장 그 병원에 가서 따지겠노라고 했다.
" 그 의사가 아직도 거기 병원에 있겠어요? "
" 아니, 그래도 그 병원에 가서 따질건 따져봐야... "
" 글쎄요... 그 의사가 아니더라도 30여 년 전에 그 병원에 근무했던 어느 누구라도 아직까지 그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
" ...... "
" 억울하신 것은 충분히 이해해요, 그런데 지금 와서 뭘 할 수 있는게 없지 싶어요. "
" 그래도... "
" 현행법상 의무기록 보존기간은 환자명부의 경우 5년, 진료기록부나 수술기록지는 10년이예요. 30여 년 전에 수술했던 기록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없어요. 이미 다 폐기처분 했겠죠. 그 병원에서 환자분을 수술했다는 증거가 남아 있는게 없을 거예요. "
" 어휴... 억울하네요... "
" 마음은 충분히 공감합니다. 왜 안 그러시겠어요. 그래도 지금 와서 뭘 하실 방법이 없으니 그냥 할아버지 안전하게 수술 잘 된 것으로 위안 삼으셔야지 어쩌겠어요. "
" ...... "
다독였다.
며칠 후 할머니는 딸과 함께 그 병원을 찾아갔다고 했다.
역시 아무 기록도 없더랜다.
그러나 환자의 소식을 들은 그 병원의 원장은 보호자의 말만 듣고 500만원을 위로금으로 주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할아버지는 별 문제없이 잘 퇴원했다.
졸지에 나는 30년간의 묵은 병을 덜어내준 명의가 되었다.
그러나 나에게도 언제라도 생길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졌다.
항상 확인, 확인, 또 확인, 그리고 확인.
그 방법 밖에는 없다.
전적으로 내 생각이지만...
의사는 바벨탑을 쌓아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의 권위에 도전하려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결코 신의 영역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벽돌 한장 한장을 쌓아올려 신이 되어야만 하는 사람.
바닥에서 올려다보며 탑이 더 높아지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언제 떨어질지도 모르는 나선형의 그 계단을
위태롭게 오르는 사람.
의사는 신이 아니다.
그러나 신이 되어야 한다.
의사가 되면서부터 그런 의무를 부여받은 사람이다.
그렇다고 신으로서 숭배 받지도 못한다.
그저 신이 주는 열매만 바랄 뿐인 모든 사람들을 위해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그 탑에 등짐을 지고 오른다.
가끔 생각한다.
내가 죽어 저승에 가면
내가 살린 그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상을 받을지
내가 실수했던 작은 일들에 벌을 받을지...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
당신은 신과 함께 살고 있는가...
이번 얘기 끝.
※’Antonio Yun의 진료실 이야기'의 저작권은 저자인 외과 전문의 엄윤 원장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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