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박도영 기자] 지난해 미국에서 승인 받은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레켐비(Leqembi, 성분명 레카네맙)가 유럽에서는 허가를 거절당했다. 약물의 효과가 부작용 위험을 상쇄하지 못한다는 판단이다. 같은 임상시험 데이터로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유럽의약품청(EMA)은 왜 다른 결론을 내렸을까.
2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유럽의약품청(EMA) 약물사용자문위원회(CHMP)는 최근 레켐비에 대한 판매 허가를 거부할 것을 권고했다.
레켐비는 에자이(Eisai)와 바이오젠(Biogen)이 개발한 아밀로이드 베타(Aβ) 표적 치료제로, 뇌에 형성되는 아밀로이드 플라크를 줄이는 작용을 한다. 미국에서는 1월 가속 승인을 받았고, 7월 정식 승인으로 전환됐다.
허가는 3상 CLARITY AD 임상시험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뤄졌다. 연구 결과 레켐비 치료는 위약 대비 18개월 후 임상 치매 평가-합계(CDR-SB) 점수의 임상적 저하를 27% 감소시켰다. 연구 시작점에서 평균 CDR-SB 점수는 두 그룹에서 약 3.2점이었으나 18개월 후 레켐비군은 1.21, 위약군은 1.66이었다.
FDA는 이 데이터로 알츠하이머병 치료에 대한 레켐비의 임상적 혜택을 확인할 수 있는지, 전반적인 위험-혜택 평가에 대한 의견을 구하고자 말초 및 중추신경계 약물 자문위원회를 소집했다. 자문위는 6월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이 연구결과가 레켐비의 임상적 혜택을 입증했다고 투표했다.
FDA는 자문위에 앞서 발표한 브리핑 문서에서 "ApoE ε4 대립 유전자의 존재는 ARIA 위험을 증가시키며, 이형접합 유전자보다 동형접합 유전자에서 더 큰 위험이 관찰된다. 항혈전제, 특히 항응고 요법을 사용하면 레카네맙을 복용하는 환자의 뇌출혈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고 했으나 "이러한 위험이 기존 승인(가속 승인)을 방해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라벨링에 명시된 대로 모니터링 및 용량 관리 지침에 대한 설명과 권장 사항을 통해 위험을 완화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FDA는 박스형 경고를 통해 ARIA와 관련된 잠재적 위험을 알리고 치료 시작 전 ApoE ε4 검사를 실시해 ARIA 발병 위험을 알리도록 했다. 또한 항응고제를 복용 중이거나 뇌출혈의 다른 위험 요인이 있는 환자에게 레켐비 사용 시 주의하도록 권고했다.
그러나 CHMP의 의견은 달랐다. 레켐비군의 CDR-SB 점수가 위약군보다 낮았지만 두 그룹 간 차이는 작다고 봤다. 이에 관찰된 레켐비의 인지 기능 저하 지연 효과가 약물과 관련된 심각한 부작용의 위험을 상쇄하지 못한다고 결론내렸다.
CHMP는 "레켐비의 가장 중요한 안전성 우려는 뇌 영상에서 나타나는 아밀로이드 관련 영상 이상(ARIA)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뇌 부종과 잠재적 출혈을 수반하는 부작용이다"면서 "해당 연구에서 ARIA 사례 대부분 심각하지 않았고 증상을 동반하지 않았지만, 일부 환자에서는 입원이 필요한 뇌출혈을 포함한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 부작용의 심각성은 약의 효과가 작다는 맥락에서 고려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CHMP는 ApoE4라는 특정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ARIA 위험이 더 두드러진다는 사실에 우려를 표명했다. 이 위험은 ApoE4 유전자 사본(copy)을 2개 보유한 사람에게서 가장 높았는데, 해당 집단은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이 높아 레켐비 치료 대상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CHMP는 "의견을 제시할 때 신경과 전문의와 알츠하이머병 환자 등 전문가로 구성된 신경학 과학 자분 그룹의 의견도 고려했다"면서 "전반적으로 치료의 유익성이 레켐비와 관련된 위험성을 능가할 만큼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유럽연합(EU)에서 시판 허가를 거부할 것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에자이 최고임상책임자인 린 크레이머(Lynn Kramer) 박사는 "질병 진행의 근본 원인을 표적하는 새롭고 혁신적인 치료 옵션에 대한 미충족 수요가 상당하다"면서 "우리는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들과 그 가까운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변화는 가져오는 데 계속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자이 측은 "CHMP 의견에 대한 재검토를 요청하고 관련 당국과 협력해 가능한 빨리 유럽연합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고 밝혔다.
한편 레켐비는 미국 외에도 일본, 중국, 한국, 홍콩 등에서 승인을 받았고, 현재 미국, 일본, 중국에서 시판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