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임솔 기자] 지난 12일 오후 1시 서울의대 융합관 강의실. 서울의대 본과 1~2학년 학생 12명이 서울의대 해부학교실 최형진 교수가 개설한 ‘해부신체구조의 3D 영상 소프트웨어와 3D 프린팅 기술 활용 연구 및 실습’ 4주 과정 중 마지막 수업시간에 참여했다.
앞선 3주 수업은 메디칼아이피, 엡손코리아, 서울의대 의공학교실 등의 관련 강의가 있었다. 이날 수업은 VR을 이용한 수술 시뮬레이션을 주제로 서지컬 마인드의 김일 대표가 강의를 펼쳤다.
최형진 교수는 서지컬 마인드에 대해 “가상현실(VR) 기술을 이용해 수술 훈련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세계 시장에서 앞서나가는 수술시뮬레이션 솔루션을 만들어 출시했다"라며 "이번 수업 시간에 안과 백내장 수술 시뮬레이션을 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지컬마인드, VR을 이용한 수술 교육 시뮬레이션 개발
“VR 수술시뮬레이션은 게임이 아니에요. 의외의 난이도에 의대생 여러분이라도 처음엔 당황하실 수 있어요.”(서지컬마인드 김일 대표)
서지컬마인드는 VR 게임 회사인 매니아마인드의 자회사로 2017년 6월 설립됐다. 이 회사는 주로 VR을 이용한 중독 치료를 연구하면서 의료 시장에 눈을 뜨게 됐다.
김 대표는 수술 시뮬레이션의 필요성으로 절대적인 수술 훈련 시간의 부족을 들었다. 김 대표는 “숙련된 외과의사가 되려면 1만5000에서 2만 시간 정도의 수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법정 근무시간으로는 충분한 숙련을 마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안과 전공의는 수술 경험 없이 전공의 과정을 마치는 경우도 발생한다. 국내에서 수술 횟수가 가장 많은 백내장 수술에서 더욱 부각된다”라며 “외과 수술을 높여주기 위해 의대나 전공의 과정에서 수술 시뮬레이션을 도입하면 수술 실력을 빠르고 안정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안과 수술을 해볼 수 있는 장비인 독일 아이지 서지컬(eyesi srugical)은 국내에 4대가 들어와있다. 하지만 대당 판매가격이 수억원대에 이르고 부품 가격이 40~50만원대에 달해 확산이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세계적인 추세를 봐도 전문의를 따기 전에 수술 트레이닝이 중요해지고 있다. 시뮬레이션을 일정 횟수 이상 통과하는 식으로 트레이닝 방향이 바뀌고 있다”고 밝혔다.
서지컬마인드의 제품은 1mm이하의 움직임 추적이 가능한 광학 모션 카메라를 이용했다. 실제 수술도구와 유사한 형태의 도구를 만들어 유사한 상태에서 체험을 해볼 수 있게 했다. 수술 과정은 전부 녹화해서 다시 확인해볼 수 있게 했다.
김 대표는 “게임 영역에서 확보한 소프트웨어 기술을 바탕으로 정밀한 인체와 수술 환경을 구현했다. 실제 수술과 동일한 경험을 구현하기 위해 실리콘 재질의 눈 물질과 수술기구를 만들었다”라며 “앞으로 수술장비 포셉(forcep)을 만들거나 풋 콘트롤러(foot controller)까지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새로운 기술을 통해 의료교육 체계에서 새로운 혁신을 도모할 수 있다. 인공지능과 결합한다면 새로운 차원의 교육과 수술 방법 발굴이 가능하다”라고 내다봤다. 이어 “향후 주사기 등 약물 삽입이나 스텐트 삽입 훈련, 내시경 기기 조작 훈련, 보톡스나 필러 등 미용성형 시술 훈련을 위한 VR 개발로 확대하고 있다”라며 “미용성형이나 마취통증의학과 전공의들을 위한 교육과정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의대생들 질문도 '수가'…수가 책정 위한 근거 마련 중
의대생들은 한 명씩 차례대로 돌아가면서 VR 영상을 보면서 각막을 깎는 등의 실제 수술을 체험했다. 기술을 접하거나 평소 관련 기술에 궁금한 점도 물었다.
한 의대생은 “실리콘 재질의 눈 부품과 나머지는 하드웨어 결합 형태로 만든 것인지”를 물었고, 김 대표는 “실리콘 재질의 눈을 한 번 사용하면 교체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사업성과 완성도를 더했다”라고 했다.
다른 의대생은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법적으로 장애가 있거나 의료기기 인증을 받는 것은 어렵지 않나”를 물었다.
김 대표는 “단순히 한국 시장만이 아니라 국가별로 인증 기준이 다르고, 완제품을 수출할 수 있는 여부 등이 다르다. 개별 사례별로 기회가 닿는대로 이야기해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의대생은 “다른 스타트업도 수가 문제 때문에 포기를 하는 사례가 있는가”를 질문했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의사들이 보통 제품을 소개하다 보면 가격이 얼마이고, 실제 수가 반영이 가능한지를 많이 묻는다”라며 “이런 문제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식품의약품 안전처 등의 정부기관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가령 서지컬마인드와 삼성창원병원은 승마 체험으로 재활 치료를 하는 VR을 개발하고 있는데, 수가를 책정할 수 있는 근거를 쌓기 위해 논문을 작성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이어 “우리나라는 규정상 새로운 의료기술에 대한 수가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있다. 의료를 접목한 여러 가지 연구를 해왔으나 사업을 하긴 어려웠던 문제가 있다”라며 “헬스케어 엑셀러레이터인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 최윤섭 대표 등의 도움을 받아 의료 분야를 확대해보고 있다”고 밝혔다.
"진료실에서 머무는 것이 아닌 세계를 바꾸는 의사가 되길"
그 다음 의대생 4명씩 4개조를 짜서 역할극을 했다. 조별로 각자 개발자, 마케터, 투자자, 의학 자문관 등을 정해 역할대로 발표하고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다. 의대생들은 2018년을 과거 시점으로 보고 10년, 20년 뒤의 미래에 일어날 법한 기술을 상상하고 여기서 오는 문제점을 두루 짚었다.
이날 나온 발표를 보면, 실제 수술 과정에서 혈관이나 조직에 정확한 각도나 깊이를 한 눈에 보여주고 정확한 수술을 돕는 기술을 구현했다. 프로브(probe) 등의 기구를 장비에 내장하고 로봇과 접목할 수 있는 가능성도 제시했다.
의대생들은 뇌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생각만으로 바로 전달할 수 있는 기술을 구현했다. 또한 VR과 인공지능을 접목해 수술 부위를 미리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의 가능성이 제시되기도 했다. 이날 학생들은 원래 예상했던 시간을 훌쩍 넘겨서까지 서로 토론하고 자신의 생각을 나눴다.
최형진 교수는 “의대생들이 그냥 흔히 보고 듣던 기업의 사례를 읊은 것이 아니다. 각자 진지하게 고민해서 실제로 가능성 있는 기술로 연결시켰다”라며 “앞으로 의대생들의 지적재산권을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실제 창업과 투자 현장에서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수업을 통해 미래 의학을 연구하고 의료현장에 쓰이는 기술을 개발하는 의사들로 성장해나갈 것을 기대했다.
최 교수는 “모든 의대생이 똑같이 개원하길 바라지 않는다. 앞으로는 의사들을 대체하는 기술이 나오고 의사들의 할 일이 없어질 수 있다”라며 “의대생 제자나 후배들은 기존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바꾸는 그런 사람이 되길 원한다”고 했다.
최 교수는 “의대생들이 진료실 안에 머무르거나 무슨 진료과를 선택할지에서 머무르지 않기를 바란다"라며 "앞으로 10년, 20년 뒤의 미래를 내다보는 의사상을 고민해보고 있다. 선택교과 수업을 통해 미래 의료를 책임질 리더 양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