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과뿐만 아니라 외과에서도 호스피탈리스트(입원환자 전담 전문의) 도입 논의가 한창이다.
다만 싼값으로 부려먹을 전공의가 많았어도 이런 논의가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대한외과학회는 5일 추계학술대회에서 '외과에 적합한 호스피탈리스트 실행모델 개발'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연세의대 이강영 교수는 "병동에서 전문의 진료가 안되는 이유는 수가 문제, 증가된 수술건수 등에 따른 것"이라면서 "입원환자에 대한 전문의 진료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재원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입원환자 관리를 모두 전공의가 해 왔다. 외과 전공의들이 주당 120시간을 근무했고, 이보다 더한 대학병원도 있는데 인간적인 근무시간이 아니다. 눈 뜨면 수술방에 가서 밤늦게까지 수술을 보조하고, 잠자는 시간을 쪼개서 병실환자들을 봐 온 것"이라고 환기시켰다.
그는 "전공의는 수술방에서 수술을 같이하고 있었지, 실시간으로 입원환자 케어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간호사들이 일부 입원환자 진료를 담당하고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의료법 위반이다. 환자 안전이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고, 반드시 짚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호스피탈리스트를 도입한 나라에서는 합병증과 사망률이 낮아지고, 재원일수가 단축되는 등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소개했다.
서울대병원 외과 이혁준 교수는 올해 1년간 호스피탈리스트를 운영한 경험을 발표했다.
서울대병원은 올해 초 연봉 8천만~9천만원, 주5일 근무, 야간과 주말 당직 제외 등을 조건으로 외과 전문의 3명을 채용해 위장관외과병동 전담의, 이식병동 전담의, 응급실 전담의로 채용했다.
위장관외과 전담의를 채용한 결과 전공의 업무량이 확연히 줄었고, 전공의들의 수술참여가 늘어났으며, 자신의 일을 나눠주는 선배가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됐고, 환자, 교수, 전임의, 전공의, 간호사 만족도가 향상됐다고 평가했다.
이혁준 교수는 "제도 도입 초기 옥상옥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가장 가까운 조력자라는 인식이 생겨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이런 입원환자 전담의사가 장기적인 직업으로서의 모델이 될지 의문이며, 고년차 전임의로 전락할 수도 있고, 전임의를 마치고 일자리가 없는 의사들의 피신처가 될 수도 있다는 현실적 한계를 지적했다.
여기에다 로컬에 취직해도 이보다 훨씬 더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고, 교수 직위를 부여할지, 외과 전문의로서의 세부전공을 살리고 싶은 욕구를 어떻게 할지 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런 한계로 인해 위장관외과 전담의는 내년 초 사직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고, 응급실 전담의는 내년 외과 전임의로 지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식병동 전담의는 이미 사직한 상태다.
그만큼 입원환자 전담의가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연세의대 장성인 교수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97년부터 입원환자 전담의사제도를 시행해 지속적으로 인력 채용이 증가해 전체 의사의 5%에 이르고 있다.
문제는 누가 이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로 귀결된다.
장성인 교수는 "우리나라 입원료의 원가보존율은 75%에 불과해 수가화를 통해 수혜자가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체로 수긍할 수 있는 주장이다.
그런데 호스피탈리스트는 진심으로 입원환자 진료의 질을 높이자는 취지일까?
외과 전공의 기피현상이 발생하지 않았어도 교수들이 호스피탈리스트 도입을 주장했을까?
이날 심포지엄에서도 일부 발표자들은 입원환자 안전과 진료의 질 보장 차원에서 전담의사를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상당수는 전공의 감소라는 당장의 문제에서 이 제도를 접근했다.
"전공의 부족이 가장 일차적인 문제다. 그러다보니까 진료 공백이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외과 현실을 보면 전공의 정원이 줄고 있는 상황에서 지원자도 급감하고 있다. 여기에다 전공의 근무 80시간 상한제가 도입되면서 의료공백이 발생하고 있으며, 간호사나 코디네이터의 불법적인 진료를 통해 이런 의료공백을 해소하고 있다."
이런 솔직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의사협회 이우영 의무이사는 "호스피탈리스트는 전공의 정원 감축, 근무시간 단축 대안으로 논의된 것이어서 출발점이 잘못됐다"고 꼬집었다.
전공의를 전공의답게 수련시키고, 입원환자들을 안전하게 케어할지에 대한 자기반성과 절심함보다는 부족한 전공의를 어떻게 '땜빵'할지가 이들의 더 큰 관심사라면 호스피탈리스트는 요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