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원칙을 어긴 정부의 말을 어떻게 믿나
[메디게이트뉴스] 전자기학 연구에 큰 업적을 남겨 전자기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는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매우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12세에 제본소에 들어가 일해야만 했다. 나중에 저명한 학자로 인정받은 뒤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일화를 전했다. 어릴 때 동네 친구 중에서 부유한 집의 아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 그가 조금 이상한 모자를 쓰고 와서 요술 모자라고 자랑했다는 것이다. 그 모자를 쓰고 가게에 들어가서 물건을 고른 뒤, 한 바퀴 돌면 다 공짜라는 것이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과자 가게에 들어가서 사탕이나 과자를 골랐고, 한 바퀴 빙그르르 돌자 점원이 공손하게 포장해서 내주었다. 이렇게 두어 곳을 다녀오자 패러데이는 모자를 빌려서 다른 가게로 들어가서 과자를 잔뜩 집은 뒤 한 바퀴 돌고 나오려고 했다. 그 때 주인이 큰 소리를 질러서 그만 과자도 내던진 채 도망치고 말았다고 한다. 이제 임기의 절반을 지나고 있을 뿐인데 국정 운영의 마지노선이라고 일컫는 20%에도 못 미치는 지지율을 갖고도 독선적인 운영을 고치지 못하는 대통령을 보면, 마치 요술 모자를 쓰고 춤을 추는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짐작하다시피 과자 가게의 주인들은 아이가 쓰고 있는 모자 때문이 아니라, 그의 집안을 보고 외상을 내준 것이었고, 부모에게 그 값을 청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진정한 권위는 그 직함에서가 아니라, 그를 선출한 국민들의 지지와 법률과 상식에 부합하는 국정의 운영에서 나온다. 지난 1년 간 대통령의 지지율이 곤두박질 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국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법과 원칙을 무시해가면서 독선적으로 국정을 해왔기 때문이다. 올 한 해 의료계를 파국으로 몰아넣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의대정원 증원과 그 이후 일련의 과정들만 보아도, 왜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비판의 소리가 드높고 지지율은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는지 잘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은 법과 원칙에 어긋나는 일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월 이후 정부는 보건복지부 장차관을 위시하여 수도 없는 망언들을 쏟아냈다. 카데바를 수입하겠다., 전세기를 띄우겠다., 전화할 수 있으면 경증이다., 등등. 그런 건 차치하더라도, 공직자가 해서는 안 될 법과 원칙을 무시하는 작태들을 저질러왔다.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전공의들의 사직 금지, 의대 학생들의 휴학 금지 등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을 잇달아 벌여왔다. 지난 2월 말로 종료된 근로계약의 연장 포기는 헌법 제15조에 명시된 직업 선택의 자유에 해당하는 합법적인 권리임에도, 정부는 헌법마저도 무시하고 수련병원들을 압박하여 사직서 수리 금지를 종용하다가 최근에야 이를 허용하고 말았던 것이다. 전공의들을 압박하기 위해 선처 없는 기계적인 법집행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정작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쪽은 정부였다. 현행 고등교육법상 의대정원 확대 등의 대입전형 시행계획은 입시연도 1년 10개월 전 공표가 원칙이므로, 2025학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은 2023년 4월 이전에 발표되었어야 하나 올해 2월에 발표하고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변해왔다. 또 갑작스러운 의대정원 증원으로 의대 교육이 파행되면 해당 의대의 인가가 취소되거나 졸업생들의 의사 국가고시 응시가 어려울 수 있다고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이 지적하자, 이에 맞서 교육부가 10월 말 고등교육기관의 평가인증 등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령 안을 입법예고 하여 의평원의 무력화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의 무리한 정책 강행을 억지로 합리화하기 위해서, 올바른 의학 교육과 의료 인력의 질적 향상을 추구해온 의평원마저도 존립을 위협받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자 없이 선을 긋고 컴퍼스 없이 원을 그리는 정부 규구준승(規矩準繩)이라는 말이 있다. 목수가 작업을 할 때 꼭 필요한 것이 원을 그리는 걸음쇠(컴퍼스)와 ㄱ자 모양의 곱자(曲尺)다. 이 둘을 합쳐 규구(規矩)라 한다. 중국 전설의 창조신 복희(伏羲)와 여와(女媧)가 가진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 더 하여 면이 평평한지 눈금자로 알아보는 수준기와 먹을 묻혀 곧게 줄을 치는 먹줄도 빠질 수 없는데, 이 둘을 합쳐 준승(準繩)이고 한다. 이 네 가지 필수 연장은 목수뿐만이 아니라 그 누구든 뛰어난 시력이나 재주를 갖고 있어도 규구를 쓰지 않으면 네모와 원을 제대로 그릴 수 없다는 것으로서, 표준을 지킬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 꼭 지켜야 할 규칙이나 법도를 가리키는 말이 됐다. 전해 내려오는 훌륭한 전통이나 법도가 있어도 무시하거나 지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사람을 다스리는 자는 아무리 지식이나 재능이 뛰어나더라도, 항상 자신이 행하는 일이 법률이나 사회 기준에 어긋나지 않도록 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법치주의는 근대 입헌국가의 통치 원리로서 국민들이 정부를 신뢰하고 따를 수 있게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지금 의료계가 정부를 믿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금껏 정부가 법과 원칙을 계속 어기면서 무리한 정책을 밀어붙이다 이 사달이 벌어졌는데, 앞으로 어떠한 약속을 하더라도 그것을 지키겠느냐 하는 것이다. 전공의와 의대생들에게 초헌법적인 사직 금지, 휴학 금지를 가해오다 어쩔 수 없이 이를 허용하게 되었던 정부인데,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복귀를 위해서 무슨 조건을 제시한들 과연 실천이 되겠는가 하는 말이다. 재작년에 이번 정부가 출범할 때 의사들이 많은 기대를 걸었던 이유는 법조인 출신으로 그 누구보다 법과 원칙, 공정과 상식을 주장했던 윤대통령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제 지난 1년 간 정부에 의해 자행되었던 법과 원칙의 파괴를 지켜보면서, 정부에 대한 신뢰를 다 지워버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지금 정부의 통치 원칙은 다수의 횡포와 대중 선동에 악용되거나 전제정치의 도구로 전락해버린 형식적인 법치주의다. 자도 없이 선을 긋고는 똑바르다고 주장하는 정부를 어찌 믿으라는 것인가. 윤대통령과 정부 당국자들은 의사들을 핍박하기 전에 올바른 잣대를 스스로에게 들이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자기편에겐 솜방망이, 상대편에게는 쇠방망이를 드는 내로남불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사들이 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에 힘들 것이고, 나날이 붕괴 가는 의료 현장에 복귀하는 길은 더욱 요원해질 것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